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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그리고 여타 험악한 인물들과 함께 낯선 선박에 탑승하며 외딴 섬으로 이송되고, 탑승 인원들은 험악한 어투로 선박 내에서 주먹다짐까지 오가는 분위기였지만, 중사 조돈일(허준호)이 총기 무력을 활용하여 단숨에 죄수들을 제압시켜 버립니다. 도착한 실미도에선 병영이 펼쳐져 있었고, 죄수 각자들에겐 기간병 하나씩 배정되었고, 훈련과 임무 완수 후에는 새로운 삶과 명예를 약속하는 최재헌의 회유에 따라 전원이 군복을 입으며 684부대가 완성되었습니다. 이윽고 죄수들은 전부 훈련병이 되어 혹독한 훈련이 시작됩니다. 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 북파되어 주석궁에 침투해 '김일성의 목을 따오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지옥훈련을 통해 이들은 단 3개월 만에 북파 가능한 인간병기가 되었습니다. 부대가 창설된 지 4개월 만에 첫번째 실전명령이 떨어져 바닷길로 북에 침투를 시도하지만 상부의 저지로 중도무산됩니다. 이후 3년 4개월간 '출정의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그들의 긴긴 기다림은 시작됩니다. 하지만, 남북한의 상황은 부대 창설할 때와는 다르게 화해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상황은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구 시대의 유물'이자 '유령부대'가 되어버린 실미도 684부대. 교육대장이 '차라리 월남에라도 파병해달라. 저들의 전력이라면 충분히 공을 세우고도 남는다.'라고 건의했지만 비밀을 유지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거절당합니다.
결국 사태가 악화되자 부대를 정리하고 훈련병들을 전원 사살하라는 상부의 명령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를 수습하기 위해서라도 최재헌은 상부를 분주하게 돌며 월남전 파병이라도 제안하지만 끝내 전부 기각된 채 일주일만의 시간이 주어지고 작전을 이행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차마 자신의 손으로 훈련병을 죽일 수 없었던 그는 강인찬을 물떠오라는 시시콜콜한 분부로 불러내어 바깥에서 작전을 엿듣도록 유도시킨 뒤 부대 수뇌부 둘에게 명령을 하달합니다. 이때 조돈일은 명령에 진심으로 당황하며 반대하는 자세를 취하는데 비해 박상근은 적극적으로 작전을 이행하려는 상반된 자세를 보이며 권총을 겨누거나 멱살까지 잡히는 등 둘의 갈등은 더더욱 고조되었습니다. 조돈일과 작전 동행이 불가능하겠단 판단을 내린 박상근은 조돈일을 출장을 구실삼아 실미도에서 제거하는 계략을 성사시켰고, 독자적으로 부대원 사살하려 했습니다.
한편, 자신과 전우들을 사살할 예정이라는 충격적인 정보를 입수한 강인찬은 부대원들에게 알렸고, 결전의 날이 다가오자 훈련병들 입장이나 기간병들 입장이나 묵혀왔던 정으로 서로를 죽이길 주저하지만, 박상근은 이미 냉혈한이 되어버렸고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서 훈련병들은 서로를 다독이며 생존을 위한 전투를 시작합니다.
훈련병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자는척하다 점호가 끝난 밤중에 무장을 마치곤 인간병기로 길들여진 실미도 특수부대원들이 선제 공격을 가해 담당 기간병들은 속수무책으로 전멸당했습니다. 각자들이 해안선과 온갖 시설을 돌며 기간병을 섬멸하는 동안 강인찬은 사령실에 굳건히 앉아있는 최재헌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둘은 총을 겨누면서도 이런 상황까지 갔어야만 했던 추궁과 회한 가득한 대답을 나누었고 끝내 "날 쏘고 가라. 아니면 내가 널 쏠 수 밖에 없을것이다"라며 최재헌은 모든걸 체념하고선 의연한 최후를 맞습니다.
특수부대원들은 실미도를 탈출하여 인천으로 가서 시외버스를 탈취하여 청와대로 향합니다. 이 사건은 라디오에서 무장공비의 공격으로 보도되며 특수부대원들까지 듣게 됩니다. 전군에 비상경계령이 발동된 가운데 이들은 대방동 유한양행 앞에서 자신들을 포위한 대한민국 육군 보병, 경찰기동대 및 특전사 병력들과 교전을 벌이고, 과정에서 특수부대원들과 육군 보병 일부는 사망하고 대부분 부상을 당했습니다.
한편, 출장을 떠났던 조돈일은 실미도 부대원을 위해 상부에 항변을 하고 버스가 군인들과 대치해있는 유한양행 앞으로 달려 들어갔습니다. 현장에 도착하고 대장 앞에서도 무장공비가 아닌 자신의 부하들이라며 직접 설득해 보겠다는 간절한 요청을 전했지만, 이미 너무 멀리 가버린 사태에서 전부 묵살당하고 조돈일 또한 버스가 국군과 대치하는 광경을 지켜볼 수 밖에 없게 됩니다. 부대원들은 마지막 총격질로 국군 정예부대까지 일부 사상을 입히는 등 살인병기로서의 능력을 발휘했지만, 끝내 수적 차이를 극복하진 못하고 전원이 부상을 입고 그렇게 죽음이 다가왔음을 알게 된 버스 안 대원들은 한상필의 제안으로 자신의 손목에 칼을 그으면서 그 피로 차내 곳곳에 혈서로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등 자신들의 마지막 흔적들을 세상에 남깁니다. 대동하던 민간인과 인질들은 전부 버스에서 내리게 한 뒤 서로 수류탄을 던져가며 전원 자폭이라는 최후를 선택합니다.
버스는 폭파되어 불구덩이가 된 버스를 향해 조돈일은 쉰 목소리로 인찬과 상필의 이름을 외치면서 사태는 전부 종결된다. 이 사건은 무장공비들의 소행으로 언론에 보도되고 윗사람들의 결재 서류들이 캐비넷에 그대로 봉인되어 세월따라 사건을 잊혀져가며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의 배경이 된 주요 역사적 사건들
1. 한국의 갈등과 긴장
한국 전쟁 (1950-1953) 이후, 한반도는 두 나라를 분리하는 매우 요새화된 비무장지대 (DMZ)와 함께 북한과 남한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그 전쟁은 평화 조약이 아닌 휴전으로 끝났고, 이것은 두 한국이 엄밀히 말하면 여전히 전쟁 중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1960년대 내내, 북한과 남한 사이의 긴장은 계속 고조되었고, 잦은 교전과 스파이 활동이 있었습니다. 양국 정부는 서로에 대해 공격적인 자세와 은밀한 작전을 벌였습니다.
2. 북한의 도발
1968년 1월, 북한 특공대가 남한의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할 의도로 남한에 침투했습니다. 청와대 습격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북한의 위협감을 높였습니다.
3. 684호기 제작
청와대 습격에 대한 대응으로, 한국 정부는 684부대로 알려진 극비 부대를 구성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부대는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하면 자유를 약속받은 죄수들과 중범죄자들로 구성되었습니다.
684부대의 임무는 북한에 침투하여 북한의 지도자인 김일성을 암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부대는 임무를 준비하기 위해 남한 해안의 작은 섬인 실미도에서 잔인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4. 임무 취소
정치적 상황이 바뀌었고 결국 암살 임무는 취소됐습니다. 684부대원들은 뚜렷한 목적 없이 실미도에 발이 묶였습니다.
가혹한 조건, 약속 파기, 그리고 자유의 전망에 직면한 부대원들은 점점 더 절박해졌습니다. 1971년, 그들은 반란을 일으키고 본토로 탈출하려고 시도했고, 그것은 남한 군대와 폭력적인 대치로 이어졌습니다.
5. 여파 및 공개 폭로
이 사건은 처음에 한국 정부에 의해 은폐되었고, 684부대의 이야기는 수십 년 동안 비밀로 유지되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이 되어서야 684부대와 실미도 사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탐사보도와 대중의 관심은 결국 관련 문서들의 기밀해제로 이어졌습니다.
실미도 수상내역
2004
- 25회 청룡영화상(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남우조연상)
- 12회 춘사국제영화제(심사위원특별상)
- 41회 대종상 영화제(각색상, 남우조연상, 기획상, 심사위원 특별상)
- 27회 황금촬영상 시상식(촬영상-동상)
- 40회 백상예술대상(영화 대상)